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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할 수 없는 복음[갈라디아서 1:1-10]

by Open the Bible 2017.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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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이 자신을 소개함으로써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시작합니다. 그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이 있을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중심 단어 : 사람,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바울

    관찰 주제:

  • 사도바울

1: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

10: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는 그리스도의

 

 

    1.  갈라디아서는 누가 누구에게 보낸 편지입니까?(1~2절)

    2.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무엇과 무엇을 대조하고 있습니까?(6~7)

    3.  그리스도의 복음’과다른 복음’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4.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를 누리는 자에게는 평강(평화)이 있다(3)는 말씀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5. 당신이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을 누릴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4) 당신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부활의 능력을 덧입고 있습니까?

    6. 나는 누구에게로부터, 무엇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을 구하고 있습니까



    -----------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지에 세워진 갈라디아 교회들은 바울이 제1차 전도 여행 중에 세운 교회들로 바울에게 있어서는 첫 열매인 동시에 사랑과 애정이 깃든 곳이었습니다(행 13-14). 


    그런데 바로 이 교회들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교회에 거짓 교사들이 침투하여 바울의 사도적 권위와 아울러 바울 복음의 신적 권위를 의심하게 만들고, 할례와 식사법 등에 있어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는 가르침을 전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과 복음의 신적 기원을 입증하기 위해 갈라디아서를 썼습니다. 



    바울은 대부분의 다른 서신에 수신인들에게 대한 찬송과 감사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는 사뭇 다릅니다. 

    수신자인 갈라디아 성도들이 “다른 복음”을 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조건적언 사랑과 관용이 기독교의 표상처럼 되어 버린 오늘 날의 상황에서 바울과 같은 긴장감 있는 어투로 말문을 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 진리가 무엇인가를 말하기도 전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은 사람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분명한 부르심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이러한 분명한 소명 의식을 가질 때, 고난과 반대를 무릅쓰고 의연하게 자신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 됨이 하나님의 뜻으로 성취되었고, 거룩한 구원 역사의 연속선상에 있다고 강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바울의 사도 됨, 갈라디아 교회의 구원은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라, 구속 사역의 연속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비록 유대인이지만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파하기 위해 이방 땅으로 건너갔습니다.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에게는 참된 은혜와 평강이 임합니다. 


    진실한 소명자는 사람의 칭찬이나 인정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만을 추구합니다. 


    그 사명을 토대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하여  다른 편지와 달리 감사와 기도를 생략하고 바로 긴급하게 복음의 핵심 내용을 긴술합니다(4절)


    어렇게  사도와 참 복음을 분별하는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왜 자신이 전한 복음만이 참 복음인가를 일깨워 주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짧은 인사 후에 강한 어조로 서신을 기록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제시하는 한 가지 기준은 ‘하나님 중심성’입니다. 

    복음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10절). 



    지금 갈라디아에 전해진 복음은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 차별이 없는,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구원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데 어떤 이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공격하고 교묘히 혼돈을 조장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7절)이 아닌 다른 복음(6-9절), 곧 율법 준수를 강조하는 유대주의에 치우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이 하나님을 떠나는 행위라고 지적하면서(6절) 그리스도의 복음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복음안에 구원이 있고 영생이 있습니다. 

    복음이면 충분합니다. 

    복음으로 하늘나라에 들어 갑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가지고 세상과 타협하거나 복음을 변질시켜서는 안 됩니다. 


    비본질적인 문화나 방식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만, 복음의 본질만은 엄격히 고수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문안 인사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책망하기 시작합니다.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를 얻는다는 복음을 버리고, 할례와 각종 규례를 지킴으로 구원을 받으려는 유대교의 율법으로 돌아가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우리가 갈라디아서를 살펴보며 염두에 두어야 할 문제는 바로 율법주의 신앙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갈라디아서가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율법주의가 당시 바울이 세운 ‘모든 교회’에 파급되었다는 사실은 그 문제가 현대의 모든 교회에도 여전히 남아 있을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율법주의는 기독교 신앙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쓴 뿌리’로 시공을 초월하는 독한 생명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율법주의의 문제가 나 자신의 문제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바울은 분명히 이야기 합니다.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한가지뿐입니다. 

     바울이 받은 것과 전한 것, 그것만이 참 복음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이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우리 안에 다른 복음을 제거 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방식이나 형태는 변화 될수 있지만 

    복음의 본질만은 양보 할 수 없습니다. 


    우리안에 다른 복음을 제거 하십시오. 

    부흥이라는 이름으로 어룩진 복음 외의 것도 우리는 겉어 내십시오.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어룩진 복음이 있다면 겉어 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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