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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통독/365 Open the Bible

[open the Bible 77]사무엘하 19-21장, 다윗의 귀환: 용서와 갈등, 그리고 남겨진 과제들

by Open the Bible 2025.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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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 the Bible 77

사무엘하 19-21장

다윗의 귀환: 용서와 갈등, 그리고 남겨진 과제들

 

 

 

[CCM]돌아오시는 길 (사무엘상 19-21장)

 

 

안녕하세요, 오픈더바이블의 최영덕 목사입니다.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비전을 품고, 여러분과 함께 성경 통독의 여정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무엘하 19장에서 21장까지의 말씀을 통해, 압살롬의 반역이 진압된 후 다윗 왕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과정과 그 이후에 직면했던 여러 사건들을 묵상하겠습니다. 특히 다윗이 요압의 냉혹한 결정으로 아들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시므이와 므비보셋에게 베푼 자비로운 용서, 세바의 반란으로 불거진 또 다른 내부 갈등, 그리고 기브온 사람들에게 약속한 정의 실현의 과정을 살펴볼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다윗은 개인적 슬픔과 정치적 필요 사이에서 갈등하며, 분열된 이스라엘을 다시 하나로 모으기 위한 지혜로운 결단들을 내려야 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리더십의 무게와 용서의 힘, 그리고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책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압살롬의 반역이라는 큰 시련을 겪은 다윗은 이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지만, 그의 앞에는 여러 복잡한 도전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므이의 용서 문제, 므비보셋과의 오해 해결, 북부 이스라엘 지파들과 유다 지파 사이의 갈등, 그리고 세바의 또 다른 반란까지 - 이 모든 문제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또한 사울 가문과의 미해결된 문제와 블레셋과의 전쟁은 다윗 왕국의 안정을 위협했습니다.

왕으로서 다윗은 반역에 가담했던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분열된 민심을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는 용서와 정의 사이에서, 개인적 감정과 공적 책임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했습니다. 사무엘하 19-21장은 왕권을 회복한 다윗이 이러한 도전들을 헤쳐나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1. 슬픔을 넘어선 귀환: 요압의 직언과 유다의 영접 (사무엘하 19:1-15)

압살롬의 죽음은 반역의 종식을 의미했지만, 다윗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로서의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다윗은 성문 위 방에서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하며 애통해하며 왕국의 승리를 잊어버릴 정도였습니다. 승리의 기쁨이 애통으로 변하자 병사들은 도둑처럼 몰래 성에 들어갔고, 반역을 진압한 군대의 사기는 급격히 저하되었습니다.

깊은 슬픔

다윗은 성문에 앉아 머리를 가리고 목놓아 울었으며, 왕의 슬픔은 전체 왕국에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왕궁은 침묵에 잠겼고, 병사들은 자신들의 승리가 왕의 슬픔으로 인해 무의미해진 것 같아 의기소침해졌습니다.

요압의 직언

"오늘 왕은 왕을 사랑하는 모든 자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셨나이다.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자들과 딸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의 마음을 상하게 하셨나이다." 요압은 담대히 다윗의 방에 들어가 왕의 슬픔이 정치적 위기로 번질 수 있음을 경고하며, 백성들 앞에 나가 그들을 격려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왕의 귀환

다윗은 요압의 말을 받아들여 성문에 나가 앉았고, 백성들은 왕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다윗은 먼저 자신의 고향이자 지파인 유다 장로들에게 사자를 보내 "너희는 왕의 친족이요 골육이라.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오는 일에 너희가 나중이 되겠느냐"며 민심을 수습하고 귀환의 정당성을 확보했습니다.

화합의 시도

더 나아가 다윗은 반역에 가담했던 아마사에게 "네가 요압을 대신하여 영원히 내 앞에서 군대장관이 되리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보냈습니다. 이는 자신을 배신했던 이들까지도 포용하여 분열된 왕국을 하나로 모으려는 다윗의 정치적 지혜와 용서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결정이었으며, 이로 인해 유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한 사람의 마음같이 다윗에게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2. 용서와 관용: 시므이와 므비보셋 (사무엘하 19:16-30)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여정에서, 다윗은 요단강 나루터에서 자신을 저주했던 베냐민 사람 시므이를 만납니다. 시므이는 천 명의 베냐민 사람들과 함께 급히 와서 다윗 앞에 엎드려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가시던 날에 종이 행한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옵소서"라고 간청합니다. 아비새는 분노하며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를 죽여야 하지 않겠나이까?"라고 주장하지만, 다윗은 단호히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오늘 내가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사무엘하 19:22)라고 말하며 시므이에게 죽지 않을 것이라 맹세합니다. 이 결정은 복수보다 화합을 선택한 다윗의 정치적 통찰력을 보여주며, 분열된 왕국을 다시 하나로 모으려는 그의 절실한 의지를 반영합니다.

또한,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도 수염을 깎지 않고 옷도 빨지 않은 채 다윗이 평안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는 증거로 초라한 모습으로 다윗을 맞이합니다. 압살롬의 반역 당시 그의 종 시바가 "므비보셋이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생각한다"고 모함하여 다윗의 신뢰를 잃었던 므비보셋은 "내 종이 나를 속였나이다. 종은 절뚝발이이므로 나귀에 안장을 지워 타고 왕께 가려 하였더니, 내 종이 왕께 가서 종을 모함하였나이다"라고 자신의 결백을 호소합니다. 복잡한 상황에서 진실을 완전히 파악하기 어려웠던 다윗은 "너와 시바가 밭을 나누어 가지라"고 판결합니다. 이는 온전한 해결책이 아닐지라도, 다윗이 요나단과의 언약을 기억하며 므비보셋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고자 한 자비로운 결정이었습니다. 므비보셋은 "내 주 왕께서 평안히 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가 전부 가져가도 좋겠나이다"라고 답하며 재산보다 왕의 안전한 귀환에 더 기뻐함을 보여줍니다.

 

3. 변함없는 충성: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 (사무엘하 19:31-40)

다윗이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마하나임에 머물 때, 80세의 고령인 길르앗 부자 바르실래는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곡식과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와(삼하 17:27-29) 다윗과 그 일행을 극진히 돌보았습니다. 이제 승리한 다윗이 요단강을 건너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때, 바르실래는 직접 요단강까지 나와 다윗을 배웅합니다. 다윗은 "내가 예루살렘에서 네가 평생 먹을 것을 주리라"(삼하 19:33)며 왕궁에서 여생을 편안히 지내도록 제안하지만, 바르실래는 "내 나이 이제 팔십이니 어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으리이까? 음식의 맛을 즐길 수 있으리이까?"(삼하 19:35)라며 자신의 늙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양합니다. 대신 그는 자신의 아들 김함을 추천하여 다윗의 은혜를 받게 합니다.

바르실래의 충성

  • 압살롬의 반란 중 다윗에게 식량과 침구 제공
  • 반역자를 돕는다는 위험을 무릅쓴 용기
  •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투자한 희생적 충성
  • 다윗의 귀환길에 요단강까지 직접 배웅

다윗의 감사

  • "네가 평생 먹을 것을 주리라"는 구체적 약속
  • 왕궁에서의 안락한 노후 보장
  • 김함에게 "네가 원하는 것을 내가 시행하리라"는 약속
  • 솔로몬에게도 바르실래의 자손을 돌볼 것을 유언

바르실래의 지혜

  • "내 나이 이제 팔십"이라며 자신의 한계 명확히 인식
  • 왕궁의 화려함보다 고향의 평안을 선택
  • 권력과 명예보다 본인의 삶의 질을 중시
  • 아들 김함을 통해 다음 세대에 축복을 연결

 

4. 새로운 갈등의 불씨: 세바의 반역 (사무엘하 19:41-20:22)

압살롬의 반란이 진압된 후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과정에서 유다 지파가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 왕을 요단강에서 맞이하자, 북쪽의 다른 이스라엘 지파들은 심각한 소외감을 느끼며 불만을 터뜨립니다. 그들은 "왜 우리의 형제 유다 사람들이 왕을 도둑질하여 요단을 건너게 했느냐"며 격렬하게 항의했습니다.

이러한 지파 간 갈등을 틈타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사무엘하 20:1)라고 외치며 반역의 나팔을 불었습니다. 북쪽 지파들의 불만을 이용한 세바의 선동에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호응하여 다윗을 떠나 세바를 따랐습니다.

다윗은 새로 군대장관으로 임명한 사촌 아마사에게 3일 내에 군사를 소집하여 반란 진압을 명령했지만, 아마사가 약속한 기한을 넘겨 지체하자 위기감을 느낀 다윗은 아비새에게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라며 신속히 출동을 명령합니다. 아비새와 함께 출동한 요압은 기브온에서 마주친 아마사에게 "내 형제여 평안하냐"라고 인사하며 가까이 다가가 그의 수염을 잡고 키스하는 척하면서 칼로 그의 배를 찔러 잔인하게 살해했습니다.

요압은 자신의 직위를 되찾아 군대를 이끌고 북이스라엘 지역을 통과하며 세바를 추격했고, 마침내 세바는 아벨벧마아카라는 북쪽 성읍까지 도망갔습니다. 요압이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자, 그 성읍의 한 지혜로운 여인이 성벽에서 요압에게 말을 걸어 중재를 시도했습니다. 그녀는 "우리는 이스라엘의 평화를 사랑하는 성읍인데 왜 멸망시키려 하느냐"고 항의하며, 세바만 넘겨주면 물러가겠다는 요압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여인은 주민들을 설득하여 세바의 머리를 베어 성벽 너머로 요압에게 던졌고, 이로써 반란은 진압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압살롬의 반란 이후에도 왕국 내부의 지파 간 갈등이 여전히 심각하게 존재함을 보여주며, 요압의 무자비한 성격과 군사적 영향력이 여전히 건재함을 드러냅니다. 또한 다윗의 회복된 왕권이 여전히 취약하고 분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5. 과거의 죄와 하나님의 공의: 기브온 사람들과의 기근 (사무엘하 21:1-14)

다윗의 시대에 삼 년 동안 계속된 극심한 기근으로 농작물이 말라죽고 가축이 죽어가자, 다윗은 이 재앙이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님을 깨닫고 하나님께 그 원인을 묻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았으니 이는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삼하 21:1)라고 응답하십니다. 이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수아 시대에 꾀를 써서 이스라엘과 평화 조약을 맺었고, 비록 속임수였지만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언약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들을 위한 잘못된 열심으로 기브온 사람들을 진멸하려 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 "내가 무엇으로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삼하 21:3)고 묻자, 그들은 은금을 원치 않고 "사울과 그의 집의 자손 일곱 사람을 우리에게 내어 주소서 우리가 그들을 여호와 앞에서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목매어 달겠나이다"(삼하 21:6)라고 요구합니다. 다윗은 요나단과 맺은 언약을 지키기 위해 그의 아들 므비보셋은 제외하고, 사울의 아들 아르모니와 므비보셋(요나단의 아들과 다른 인물), 그리고 사울의 딸 메랍의 다섯 아들을 내어줍니다.

이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 처형되자, 사울의 첩 리스바는 베 천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 펴고 추수 시작부터 하늘에서 비가 내릴 때까지 그곳을 지키며 낮에는 공중의 새가, 밤에는 들짐승이 시체를 훼손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러한 리스바의 모성애와 헌신에 감동한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뼈를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로부터 가져오고, 처형된 일곱 사람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 있는 사울의 아버지 기스의 묘에 정중히 장사합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과 잊힌 죄악까지도 기억하시고 공의를 요구하심을 보여주십니다. 또한 지도자의 죄가 한 세대를 넘어 후대와 국가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경고하며, 동시에 리스바와 같은 헌신적인 사랑의 가치와 다윗의 애도를 통한 화해의 중요성도 일깨워 줍니다. 기근이 그친 것은 하나님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입니다(삼하 21:14).

 

6. 계속되는 도전: 블레셋 거인들과의 싸움 (사무엘하 21:15-22)

사무엘하 21장 후반부(15-22절)는 다윗과 그의 용사들이 블레셋의 거인들과 싸워 승리한 네 차례의 전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비브놉, 삽, 골리앗의 아들로 추정되는 또 다른 거인, 그리고 여섯 손가락과 발가락을 가진 기형적인 거인까지, 모두 갓 출신의 거인들이었습니다. 노쇠해진 다윗이 이스비브놉과의 전투에서 위험에 처했을 때 아비새가 그를 구하자, 부하들은 다윗에게 더 이상 전쟁에 나가지 말 것을 간청했습니다. 이는 다윗의 통치 말년까지도 외부의 위협이 계속되었으며, 그와 그의 충성스러운 부하들의 용맹함으로 나라를 지켜냈음을 보여줍니다.

사무엘하 19장에서 21장은 압살롬의 반역 이후 다윗 왕국이 직면했던 복잡다단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시므이와 같은 적들에 대한 용서, 므비보셋과의 오해 해소, 바실래와 같은 충성스러운 지지자들에 대한 보답 등 화해의 노력 속에서도 세바의 반역과 같은 새로운 갈등이 끊이지 않았고, 사울의 기브온 사람들 학살과 같은 과거의 죄는 세 해 동안의 기근이라는 현재의 고통으로 이어졌습니다. 다윗은 이 모든 과정에서 때로는 관용을 베풀고, 때로는 요압과 같은 강경파를 통제하며 단호한 결단을 내리고, 때로는 기근의 원인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묻고 순종하며 왕국을 이끌어갔습니다. 그의 모습은 완전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며 끊임없이 씨름했던 한 인간이자 지도자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

 

(다음 편에서는 '다윗 왕국의 위기와 하나님의 섭리: 세바의 반역, 다윗의 노쇠, 인구 조사의 죄

'에 대해 묵상해 보겠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다윗의 귀환, 용서와 화해의 정치: 시므이와 므비보셋 사례를 중심으로
  • 세바의 반역, 끝나지 않은 갈등: 이스라엘과 유다의 분열 조짐
  • 기브온과의 언약, 잊힌 죄의 대가: 국가적 책임과 공동체적 회복
  • 충성과 배신, 다윗 주변의 인물들: 요압, 아마사, 리스바의 이야기

오픈더바이블은 여러분의 성경 통독 여정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여러분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분과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 저희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사무엘하 20-24장을 통해 "다윗 왕국의 위기와 하나님의 섭리: 세바의 반역, 다윗의 노쇠, 인구 조사의 죄"에 대해 묵상해 보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돌아오시는 길(사무엘상 19-21장).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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