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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 성경읽기/강의자료

마태복음의 하나님의 나라

by Open the Bible 2017.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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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의 하나님의 나라

성경을 전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사상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언약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구약에 살았던 성도들에게도 큰 관심의 대상이었다.

물론 신약과 같이 분명하고 확실하게 그 개념이 드러난 것은 아니라 할 지라도, 11:8-10,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이 장막 생활한 것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고 고백한 것은, 구약의 믿음의 조상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살았던 종말론적 신앙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특별히 마태복음에는 하나님의 나라 사상이 매우 자세하고도 열정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1) 마태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명칭

 

. 천국 (35)

마 3:2,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4:17,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나라 (1)

마 6:10,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하나님의 나라(4)

마 12:28,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마 19:14,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마 21:31,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마 21:43,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자기 아버지의 나라(1)

마 13:43,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주의 나라(1)

마 20:21,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그 나라(1)

마 21:43,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내 아버지 나라(1)

마 26:29,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렇듯 다양한 표현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을 설명한다.

 

2) 명칭과 관계성

마태복음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관계되어 나타나는 설명 중에 특히 관계성을 부각시키는 말씀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는 성경공부의 재료가 된다.

 

. 찾아볼 예제

아버지와 아들, 예수와 아버지, 의인과 아버지, 왕과 백성, 나라와 신하, 주와 종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표현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찾아내듯이 마태복음 전체에서 찾아 보라.

 

) 주와 종의 경우

20장의 포도원 품군 비유에서 관계성을 나타내는 표현을 찾아 보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5장의 달란트 비유에서도 같은 형식으로 찾아 보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아버지와 아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예수와 아버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의인과 아버지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왕과 백성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나라와 신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 마태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될 자격

 

. 긍정적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될 자격

 

) 자격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에 있어서 우선 심령이라는 말은 무엇인가?

심령(心靈)은 단순히 마음을 가리키는 정도가 아니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심오한 영혼의 상태이다.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신다고 말씀하는바, 여기서의 우리 영이 본문에서 말하는 심령이다.

가난하다는 말은, 절대 빈곤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파산하여서 부채를 갚을 길이 전혀 없을 뿐더러, 매일의 생활을 자신이 번 것으로는 영위할 수 없을 정도의 비참한 가난을 의미한다.

히브리어에서 말하는 가난의 정의는 매우 심각하다. 비천하고 무력한 사람으로 하나님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해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을 정의한다면, 자신을 구하기 위하여는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며, 무기력하여서 하나님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실로 자신이 스스로 노력하여도 그 심령의 부족함을 채우지 못하는 사람만이 무조건적이며 철저하게 그리스도에게 의지할 수 있다. 원래 가난이란 물질적인 면에 있어서 축복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정신적인 면에도 사고범위나 이해가 결핍되었다는 뜻이 되어, 별로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

가난이 내포하는 보다 깊은 뜻은 소극적으로는 세상의 모든 재리와 탐욕, 염려와 수고에서 벗어나, 거지와 같이 굽실거리면서 하나님의 순수한 은혜와 자비만이 채워지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힘으로는 생명을 얻을 수 있는 힘이 절대적으로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단지 하나님에게만 그 도움과 힘을 얻을 줄 아는 심령을 말한다. 마틴 루터는 우리는 진실로 구걸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였거니와, 참으로 얻기를 바라고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 가난한 심령에게는, 그가 비어낸 겸손의 그릇의 분량만큼 하나님의 나라가 채워지는 감격을 실제로 느낄 수 있다.

구약의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도우시는 수많은 실질적 계획을 율법에서 보여 주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이시지만,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신다는 것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찾으신다.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라고 말씀한다. 겸손은 천국을 소유함으로 누릴 수 있는 존귀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러므로 이런 자에게 나타나는 축복은 하나님의 나라 그 자체이다. 천국이라는 것은 모든 성도들이 첫번째의 것으로 언제나 간직해야 할 보배요, 축복이다. 천국은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 있고, 그에게서 나오는 은혜와 권세와 영광으로 충만한 곳이다.

) 자격

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는 복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서 출발한 자기 신앙의 완성을 위한 노력은 그리스도에게서 당연히 최고점을 이룬다.

기독교 교리 중에 나타난 역설중의 역설이다. 고난받거나 핍박받음이 복이 된다는 것! 본문의 핍박을 받은의 의미는 핍박을 당하도록 허용한 상태라든가, ‘핍박을 견딘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는 마10:39,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을 잃는 자는 도로 찾을 것이라고 했고,

바울도 디모데에게, 딤후1:8,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한다.

14:22,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하지만,

예수는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지만 안심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위로하시니 담대할 것이요(16:33),

딤후3:12, ‘무릇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언급한다.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그 고난을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나의 몸에 채우는 가시밭길 같은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한다.

 

󰁾 핍박받은 자가 왜 복된가?

 

1.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5:12,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다고 하였으니, 선지자를 핍박한 세상은 지금도 성도들을 핍박함은 당연하고, 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나신 예수께서는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하시면서 핍박당하는 성도를 로 표현하심으로써, 성도들과 함께 하심을 말씀한다.

성도를 핍박함은 예수를 핍박함이니, 핍박받는 자는 예수와 함께 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후1:5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침을 오히려 기뻐했고, 5:41에서 베드로는 예수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했다.

 

2. 의를 위하여 핍박받음은 고난을 통해 성화되는 축복을 받기 때문이다.

119:71-72,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하며, ‘주의 입의 법이 내게 천천 금은보다 귀하다고 고백하니 얼마나 귀한가?

베드로도 고난의 유익성을 설명하면서 벧전1:7-8,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기뻐하도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성도를 아름답게 양육하시기 위하여 고난이라는 방편을 사용하신다.

5:3-4, ‘그러므로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라하며 가르친다.

 

 

3.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하늘에서 상급이 크기 때문이다.

모세는 히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시는 이를 바람이라고 했다.

고후4: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라고 위로하면서 바울은 롬8:17-18에서 확실한 권면으로 상급을 설명한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목 베임을 당하는 야고보처럼, 돌에 맞는 스데반처럼, 여러 환난속에서도 꿋꿋했던 바울처럼, 담담하게 의를 위하여 고난 당함을 각오하며 살기 때문에 복된 인생들이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자의 것이다.

 

) 자격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시대는 어쩌면 거짓 선지자의 주된 활동 무대인지도 모른다. 너무나 많은 교훈의 홍수 속에서 어떠한 것이 과연 정확한 하나님의 교훈인지를 알아내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가를 말할 때에, ‘주여 주여 하면서 행하는 자들이 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충격적인 선언을 하신다.

 

거짓 선지자를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7:16, ‘그의 열매로 안다고 했다.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마다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했다. 아무리 능력을 행하고, 아무리 좋아 보여도 나쁜 열매를 보이는 사람이라면, 깊이 그의 가르침과 생활을 주의하여 보아야 한다. 자기의 유익만을 탐하고, 자기의 영광만을 보이고, 자기의 힘으로 모든 것을 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능력을 받았다고 하면서, 성도들을 돕고 위로하고 신앙의 성장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성도를 저주하고 정죄하고, 상처만 주고 순종하되, 능력있는 자기를 복종하라는 자! 분명히 경계해야 한다. 그들도 분명하게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많은 권능을 행할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신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았다고 하더라도 주님은 그들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신다. 13: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서 내려오게할 정도로 강력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어찌든지 주의 말씀을 부여잡고 항상 주님의 말씀과 일치되는지를 살피는 자세가 꼭 필요하다. 능력과 기사를 행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신앙이 잘못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늘 경성해야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힘써야한다.

우선 늘 말씀에 기준해서, 계속 그를 깨달으려 노력하고, 신앙의 좋은 동지와 교제를 계속하고, 주어진 삶의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실패 속에서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나중에 주님이 심판하시는 기준이 능력있는 역사함이 아니라, 25장에서 심판하심과 같이, ‘지극히 작은 자하나에게 행하는 즉 적은 믿음을 가지고도 할 수 있는 일임을 기억하고 살아야 한다.

 

) 자격

11:12, 세례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느니라

천국은 지금부터는 침노하는 자가 빼앗느니라고 하신다.

침노한다는 말은 대단한 열심과 노력 그리고 적극적이며 진취적인 신앙을 말한다. 세례 요한의 때까지라는 말은 구약시대의 종결을 말씀하여 주시는 바, 4:5, ‘엘리야의 심정을 가진 자가 와서 자녀들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옮기겠다고 했는데, 이 엘리야가 세례 요한이다. 이제는 문이 열리었으므로 열심을 다해 주를 향하여 나아가라고 하신다.

 

) 자격

19:14,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중요한 자격요건이다.

어린아이와 같아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 자격

21:31, 세리와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회개의 문제이다.

회개하는 자라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먼저 강조하는 말씀이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들의 응답을 기대하면서(1:15), 회개를 촉구한다.

4:17,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장의 세례 요한의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는 합당한 열매와 같이 예비적 회개의 모습이며, 생활에 따른 율법적 회개를 많이 강조하지만,

4:17의 회개는 다분히 천국에 합당한 자로서의 다시 말해서 요3장의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는 회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바울은 롬13:11-14에서 밤의 생활을 청산하고, 낮의 생활을 하여야 할 것을 요구하는데,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서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옷 입는 자로서의 생활의 모습을 요구한다. 21장에서 창기와 세리를 바리새인들과 비교하는 것은 참된 회개의 마음을 주님이 강조하심이다.

 

) 자격

21:43,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열매의 문제이다. 이 말씀도 역시 계속해서 회개를 강조하는 말씀인바 삶의 열매를 강조함이 다를 뿐이다.

 

. 부정적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 될 자격

 

) 자격

5:20,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본문에서 말하는 는 다분히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까지라도 실천하는 행위이다. 예수께서 비판하셨던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의 행위 중에 마23:23을 반드시 이 말씀과 연결해야 한다. 주님은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백성은 행하는 의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나아야 한다. 오늘날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누구인가? 최소한 우리는 자기행위로써 구원을 얻겠다고 하는 불교인이나 기타 다른 종교인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것으로도 말할 수 있다.

 

) 자격

7:21,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들어갈 것이 아니라

주여 주여한다는 말씀도 역시 입술만의 고백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바로 연결되는 말씀이 무엇인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지 않았는가?

행함에 있어 다소 평범함을 추구할 줄 알아야 한다. 계속되는 본문에서 사람들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고, 선지자 노릇하며, 많은 권능을 행했다고 말할 때에 주님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시며 도무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주님의 심판기준이 마25장을 보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에 대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할 수 있는 지극히 작은 믿음을 중시하신다.

주여 주여라는 고백만으로는 안된다. 하나님 아버지의 귀하신 뜻을 기억하며 행함이 없으면 곤란하다.

 

) 자격

18:3,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본문의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는 자격은 제자들의 상급 논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면서 낮춤을 강조하신다. 계속해서 어린아이를 영접할 수 있는 믿음이나 마음이다. 이것이 자격이다.

낮춤과 영접함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격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런 어린아이를 실족케함은 매우 불행한 일을 초래할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매우 쉬우면서도 동시에 쉽지 않다.

 

) 자격

19:24,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재물과 관계된 유일한 표현이다.

마태는 율법적으로도 흠 없이 생활하고, 남부럽지 않게 살던 어떤 청년이 결국은 재물문제 때문에 영생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다. 19:22에서 마태는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가니라고 쓸쓸한 마음을 담고 기록한다.

마태는 이미 자신의 재물적 풍요를 주님과 바꾼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태는 세리 출신이었다. 2:14-15, 마태는 예수께서 자기를 불러주신 것에 감사하는 잔치를 베풀 정도의 재력이 있었다. 그러나 마태는 이 재물로 과감히 주님을 샀다. 재물과 하나님의 나라가 관계되지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실감하며 살 때가 많다.

 

4) 마태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와 상급

 

. 하나님의 나라 자체가 상급이다.

상급의 본질(本質)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가장 큰 특징이 하나님 자신이듯이 우리가 누릴 축복 중의 축복은 하나님의 나라 그 자체이다.

마태복음에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급적 표현으로 말씀하신 곳이 여러 곳 있다.

가장 좋은 예 중에 하나는 산상수훈에서 나온 말씀으로써, 5:3, 10에 두 군데에서 언급하셨다. 심령이 가난한 자와 그리고 의를 위하여 핍박받은 자들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하셨다.

직접적인 언급으로는 가라지 비유를 설명하는 가운데 주님이 하신 말씀이다.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라고 하신다.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를 소유하게 될 것이다.

13:43,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두번째는 주님이 마지막 심판하실 왕으로 오실 것을 예언하는 말씀 중에 나온다.

25:34,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기록했다. 이 본문에서는 예비된 나라를 상속할 것을 말씀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 그 자체가 상급이다.

 

.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를 중심으로

상급을 받을 조건(條件)이다.

5:19, 버리고/ 가르치는 자 --- 천국에서 작다

행하며/ 가르치는 자 --- 천국에서 크다

주님이 가르치시고자 하는 중심이 무엇인가?

율법을 온전히 이루시고자 하심이니, 그 율법 중에서 작다고 버리는 것이 있으면 안된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다소 엄중한 말씀도 하신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다.

물론 행위 구원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주님이 보시는 것은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삶이다. 지극히 작은 계명이라도 말씀을 지키는 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상급 받을 조건이 된다.

 

. 세례 요한을 중심으로

상급을 받을 시대적인 축복이다.

11:11, 극히 작은 자라도 ---- 천국에서 크다

주님은 세례 요한에 대하여 극찬하셨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고 하셨으니, 세상 사람가운데 가장 큰이가 바로 세례 요한이라는 말이다. 곧 이어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고 하셨으니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로 나타날 것이라고 하셨다. 이는 상급적 차원에서 보면 안된다. 세례 요한이 세상에서는 큰 자나 천국에서는 매우 작은 자일 것이라는 추측을 해서는 안된다. 혹 그가 변절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등의 억측도 불가하다.

단지 이것을 시대적인 구분으로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세례 요한까지를 구약으로 보아야 한다.

세례 요한이 큰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된다.

그가 직접 예수 그리스도를 눈으로 보았고, 예수를 예비한 선지자가 되었기 때문에 세상에서 큰 자라는 인정을 받았으나,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죽었으므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후에 태어난 인생들은 과연 복된 것이요, 구약적 인물들보다 클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 제자들의 논쟁에서

상급 받을 자격이다.

18:1, 제자: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 상급논쟁

18:3, 예수: 누가 들어갈 수 있느냐? == 자격론

18:4, 어린아이처럼 낮춘 자 =========== 천국에서 크다

명쾌한 천국에 들어갈 자에 대한 자격론이다.

제자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처지를 깨닫지 못하고 단지 누가 큰가에 대하여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주님은 겸손한 자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를 찾고 계신다.

어린아이에 대한 사랑과 그들을 어떻게 영접해야 하는가를 바르게 교훈하신다.

 

4) 마태복음의 비유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교훈

 

. 개관

예수께서 마4:17,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심으로써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4:43, 주님이 오신 목적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고자 함임을 말씀하셨다.

유명한 산상보훈의 마5-7장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된 사람들의 생활을 강론하시며,

또한 마13장의 비유로써 하나님의 나라의 특성을 갈파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니, 말씀을 받은 자의 옥토로 만드는 수고가 필요하고, 상당한 손실이 있으나 충분하게 회복됨을 교훈하시고(씨뿌리는 자),

하나님의 나라는 외모로 판단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심령에 이룬 자들이 이를 유지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많은 외부적 어려움이 있음을 말씀하시고(가라지),

아무리 시작이 미미하고 초라할 지라도, 생명이기에 멸시대상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장하는 것이며, 후에는 남에게 유익을 끼치는 외부적 영향력을 강조하시며(겨자씨),

현재는 천대를 받아도 숨은 실력이 후에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이며, 겨자씨는 잠시동안은 나타날 수 없지만, 누룩은 묻히는 순간부터 영향력을 발휘하는 내부적 영향력을 보이는 것이라고 강조하며(누룩),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한 자는 기쁨을 억제할 수 없고, 그 가치를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전폭적인 투자를 해야 할 것이라고 교훈하시며(감추인 보화),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될 이는 은밀한 중에 능력으로 역사해야 할 것이요(좋은 진주 구하는 장사),

결국에 가서는 선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그물), 너무 조급해 하지 말 것이요, 나타난 현실에 너무 동요하지 말 것을 강조하신다.

 

강론대상

강론장소

비유제목

성경본문

비유와 중심 교훈

무리들

에 게

해변가

에 서

*씨 뿌리는 자

13:3-9

심령상태

가라지

13:24-30

신앙유지의 고통

겨자씨

13:31,32

외부적 영향력

누룩

13:33

내부적 영향력

제자들

에 게

집에서

*가라지

13:37-43

 

감추인 보화

13:44

소유한 기쁨, 전폭투자

진주 구하는 자

13:45,46

드러날 때의 빛

그물

13:47-50

심판

( *는 주님이 해설하신 비유 )

 

. 미래성

마태복음은 하나님 나라가 아직 완전히 성취되어진 것이 아니라고 한다.

20장의 혼인잔치 비유는 주님이 왕()으로서 오실 것을 나타내고,

25장의 열처녀 비유는 주님이 신랑(新郞)으로서 오실 것을 비유하며,

25장의 달란트 비유는 주님은 오실 주인(主人)으로서 묘사되고 있음을 보면서,

이런 비유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장차 미래에 실현될 것임을 암시한다.

 

. 마태복음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포용성

하나님의 나라의 포용성을 나타내는 본문을 두 군데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8:12,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앉으려니와

백부장의 하인을 고치는 사건의 결론으로써 주신 말씀이다.

주님은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찾아보지 못했다고 하시면서 많은 사람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은 바깥 어두움에 쫓겨날 일도 있겠다고 말씀하신다.

많은 사람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그리고 나라의 본 자손이라는 표현이 대비된다. 여기에서 천국백성의 다양성 및 포용성을 볼 수 있다. 믿음의 아브라함 자손들과 많은 사람들, 여기의 많은 사람들은 분명히 이방인을 가리킴이 본문의 진행상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의 나라가 열려져 있다.

 

둘째, 12:28,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주님께서 귀신들려 벙어리된 자를 고치셨을 때 바리새인들이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비난할 때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의 임하심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 백성되는 것은 성령의 임하심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세력이 정복되는 곳과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나라 백성됨을 말씀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의 임하심에 관하여 모두에게 열려져 있는 나라이다. 주님은 성령의 임하심을 말씀하시고 곧바로 성령을 훼방하는 문제를 언급하신다.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 죄가 나온다.

어떤 죄가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가?

용서되지 않는 죄는 없다. 요일5:16,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다고 했지만 그러면 요일5:16이나 마12:32의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

언제나 성령과 관계되어야 한다.

즉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죄,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회개하여야 하는데, 회개하도록 감동하시는 성령을 훼방하면 어찌 사함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함을 얻지 못하여 사망에 이르는 죄가 생길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에 임하심에 관하여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것처럼, 또 다시 회개하는 일에 관하여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하나님의 나라의 포용성은 당연히 회개와 관계된다.

 

. 마태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특징 용어

) 천국의 비밀

13:11,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다고 하신 것은 주님이 비유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시는 이유중의 하나이다.

비밀은 곧 그리스도이다.

특히 비밀이라는 말은 바울이 많이 사용한다.

3:4,9,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26-27,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비밀은 곧 그리스도요, 그리스도로 인한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 천국의 아들

13:38, ‘좋은 씨를 뿌리는 자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는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군은 천사들이라고 하시며 가라지 비유를 설명하실 때에 나온 표현이다.

그러므로 천국의 아들들이라는 것은 참된 신자를 가리킨다.

 

)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

13:52, 매우 독특한 표현이다.

본문의 제자된이라는 말은 훈련된이라는 말로 보아야 한다.

원래 서기관이란 유대식의 특수한 방식으로 율법 교육을 받은 사람들인데 여기에서는 성경에 정통한 모든 사람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었다. 즉 천국학교를 마치고 그 학교의 정신을 충분히 흡수하고 졸업한 제자를 말한다.

잘 훈련된 제자는 새로운 진리들을 옛 진리에 비추어 잘 가르치고 사용하는 성도들이다.


) 천국 열쇠

16:19,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대하여 주님이 그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시면서 주신 축복의 말씀에 나온다. 한마디로 교회 생활을 통한 축복이다.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는 것은 어떤 교회나 교황의 권위를 나타내려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백성들의 교회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귀한 축복을 말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고자된 자

19:12, 바리새인들의 이혼 문제에 대한 질문에 답하실 때 하신 것이다.

주님의 이혼불가를 말씀하자 제자들이 그러면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것이 편할 것이라고 빈정거림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독신은 타고난 사람 또한 신체상으로 태어날 때부터 독신으로 지낼 수밖에 없는 자 또한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고자가 된 자가 할 수 있다.

주께서 이 말씀을 받을 수 있는 자는 받으라고 하셨다.

좋은 예로 바울을 말할 수 있다. 바울은 이것을 은사라고 했다.

고전7:7을 보라. 이 말씀은 결국 천국을 위하여 결단하는 일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 천국 문

23:13,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시면서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표현으로 천국의 어떤 문을 지칭하는 것처럼 생각할 필요는 없다.

먼저 믿는 사람들이 바로 천국 문임을 말한다.

본문에서는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생활과 교훈을 가리킨다.

잘못된 생활로 천국이 자기들의 것이라 하지만 결국은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요,

잘못된 교훈으로 가르치니 다른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문의 천국 문이라는 표현은 먼저 믿는 사람들의 삶이나 교훈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 마태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간구및 소원

 

) 6:10, 나라가 임하옵시며

가장 간절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간구이다.

물론 주님의 기도 속에 나오는 말씀이지만, 날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이 땅에 임하여 오기를 기대하면서 살아야 한다.

 

) 26:29,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소망삼고 살아야 할 말이다.

주님께서도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귀한 새 포도주를 마시기를 원하시니 어찌 우리가 그 날을 사모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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