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the Bible 69
사무엘하 1,2,5장
다윗 왕조의 시작: 슬픔과 애가, 내전과 분열, 그리고 예루살렘 정복
open the Bible 069 다윗 왕조의 시작: 슬픔과 애가, 내전과 분열, 그리고 예루살렘 정복
1 다윗 왕조의 시작: 슬픔과 애가, 내전과 분열, 그리고 예루살렘 정복 사무엘하 1,2,5장을 통해 다윗 왕조의 시작을 살펴봅니다. 사울과 요나단의 비극적 죽음, 7년에 걸친 내전, 예루살렘 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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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픈더바이블의 최영덕 목사입니다.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비전을 품고, 여러분과 함께 성경 통독의 여정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무엘하 1장, 2장, 5장에 나타난 다윗 왕조의 시작을 묵상하며, 사울과 요나단의 비극적 죽음에 대한 다윗의 진정한 애도, 유다와 이스라엘 간의 7년에 걸친 내전, 그리고 여부스 족속으로부터의 예루살렘 정복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사무엘상 26-27장을 통해 다윗과 사울의 마지막 만남과 용서, 그리고 블레셋 땅에서의 이중생활을 묵상하며, 엇갈린 운명, 숨겨진 믿음,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사울의 죽음을 듣고 옷을 찢고 슬퍼하는 다윗의 진실된 애도, 이스보셋과 다윗 사이의 내전으로 인한 이스라엘의 분열, 그리고 다윗이 33세에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다윗 성'을 세움으로써 통일 왕국의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리더십, 인내,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표를 기다리는 믿음에 대한 교훈을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1. 사울의 죽음과 다윗의 애가 (사무엘하 1:1-27)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쳐죽이고 돌아와 다윗이 시글락에서 이틀을 머물더니...다윗에게 아뢰되...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었나이다 하는지라...다윗이 슬퍼하여 울며 저녁까지 금식하니라...다윗이 이 슬픈 노래로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을 조상하고...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이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 그들은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하였도다...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사무엘하 1:1-27)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 소식을 들은 그 순간, 옷을 찢고 애도의 표시를 했으며, 저녁까지 슬퍼하며 금식했습니다. 특히 그가 지은 애가에서는 사울을 "이스라엘의 영광"이라 부르며, 그를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로 존경했습니다. 또한 요나단에 대해서는 "여인의 사랑보다 더한 사랑"을 고백하며 자신의 가장 친밀한 친구를 잃은 깊은 상실감을 표현했습니다.
진정한 슬픔과 애도
다윗의 애가는 단순한 의례적 추모가 아닌 진심 어린 감정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는 사울과 요나단을 "독수리보다 빠르고 사자보다 강한 자"로 묘사하며, 그들의 용맹과 업적을 기렸고, 특히 요나단을 잃은 슬픔은 그의 시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으로 나타납니다. 다윗은 자신을 핍박한 사울과 자신을 구한 요나단 모두를 동등하게 애도함으로써 개인적 감정을 초월한 참된 애도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원수를 향한 용서와 관용
다윗은 자신의 목숨을 열 번도 넘게 노렸던 사울을 "이스라엘의 영광"이라 부르며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했습니다. 그는 사울을 향한 개인적인 원한을 완전히 내려놓고, 오히려 사울과 요나단의 용맹과 아름다움, 그들이 이스라엘에 기여한 공헌을 기렸습니다. 이는 다윗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람을 바라보는 영적 성숙함을 보여주며, 후에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불리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2. 이스라엘의 내전과 분열: 유다와 이스보셋 (사무엘하 2:1-32)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유다 사람들이 와서 거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유다 족속의 왕으로 삼았더라...사울의 군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이 이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길르앗과 아술과 이스르엘과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더라...요압의 군사들과 다윗의 군사들이 서로 대치하니라...그 날에 전쟁이 심히 맹렬하더니 아브넬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의 부하들 앞에서 패하니라" (사무엘하 2:1-32)
사울의 전사 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다윗은 헤브론으로 가서 유다 지파의 지지를 받아 기름 부음을 받고 남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반면, 사울의 충성스러운 군사령관 아브넬은 사울의 유일한 살아남은 아들 이스보셋을 마하나임으로 데려가 북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시켰습니다. 이스보셋은 40세에 왕위에 올라 2년간 통치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아브넬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7년 6개월간 두 왕국으로 나뉘어 내전을 겪게 되었습니다.
분열과 갈등
이스라엘의 분열은 단순한 권력 다툼을 넘어 깊은 부족적 갈등을 반영했습니다. 남쪽의 유다 지파는 다윗의 고향이자 오랜 지지 기반이었고, 북쪽의 베냐민 지파와 다른 지파들은 사울 가문에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브온 못가에서 벌어진 첫 대규모 전투에서 다윗의 군대 지휘관 요압은 아브넬의 군대와 맞섰고, 이 전투에서 다윗의 군사들이 승리하여 아브넬의 군대는 360명의 사상자를 입었지만 요압의 동생 아사헬도 아브넬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진행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이미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하셨고, 이 내전은 결국 다윗을 통한 이스라엘 통일로 이어질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내전 중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기다렸고, 스스로 왕권을 차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 다윗은 헤브론에서 여러 아내를 통해 여섯 아들을 얻었으며, 그의 가문은 점점 강성해진 반면 이스보셋의 세력은 약해져 갔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셨음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3. 아브넬의 배신과 죽음: 권력 다툼의 비극 (사무엘하 3:6-39)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아브넬이...다윗에게 전령을 보내 이르되 이 땅이 누구의 것이니이까 또 이르되 당신은 나와 더불어 언약을 맺사이다...요압이...아브넬을 속여...칼로 그의 배를 찔러 죽이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로 말미암음이더라" (사무엘하 3:6-39)
아브넬은 이스보셋의 왕권을 강화하는 핵심 인물이었으나, 사울의 첩 리스바와 관계를 맺었다는 이스보셋의 비난에 크게 분노했습니다. 이 불화를 계기로 그는 다윗에게 밀사를 보내 이스라엘 전체를 다윗에게 넘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다윗은 이 제안을 받아들여 자신의 아내 미갈을 돌려받는 조건으로 아브넬과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은 헤브론 성문에서 아브넬을 따로 불러내어 과거 자신의 동생 아사헬을 죽인 것에 대한 복수로 그를 살해했습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통일에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배신과 복수의 악순환
아브넬의 배신은 개인적 모욕에서 시작되었으며, 요압의 복수는 가족의 원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스보셋은 아브넬이라는 강력한 지지기반을 잃었고, 요압은 다윗의 분노를 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권력 다툼과 개인적 원한의 악순환은 결국 이스라엘 내부의 분열을 심화시켰고,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복수심과 권력욕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경고합니다.
다윗의 정치적 지혜와 애도
다윗은 아브넬의 죽음을 듣고 "오늘 이스라엘에 한 왕자요 위대한 자가 죽었도다"라고 선언하며 자신은 이 살인과 무관함을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그는 왕으로서 금식하고 옷을 찢으며 성대한 장례식을 치러 온 백성들 앞에서 아브넬을 예우했습니다. 또한 요압의 행동을 강하게 비난하면서도, 자신의 군사령관을 즉각 처형하기보다는 "나는 비록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나 오늘 약하다"라고 말하며 정치적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이는 다윗이 개인적 감정보다 국가의 통합과 안정을 우선시했음을 보여줍니다.
4. 이스보셋의 죽음: 사울 왕조의 몰락 (사무엘하 4:1-12)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죽었다 함을 듣고 손의 맥이 풀렸고 온 이스라엘이 놀라니라...바아나와 레갑이...이스보셋의 침실에 들어가 그가 침상 위에서 낮잠 자는 것을 보고 그를 쳐죽이고 목을 베어 그의 머리를 가지고 밤새도록 아라바 길로 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이스보셋의 머리를 드리며 아뢰되...다윗이...그들의 수족을 베어 헤브론 못 가에 매달고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져다가 헤브론에서 아브넬의 무덤에 매장하였더라" (사무엘하 4:1-12)
이스보셋은 자신의 유일한 지지자였던 아브넬의 죽음 소식에 크게 낙담했고, 그의 취약한 상태를 본 베냐민 지파 출신의 군대 지휘관 바아나와 레갑이 기회를 노렸습니다. 그들은 정오에 밀을 가지러 온 척하며 궁전에 들어가 낮잠을 자고 있던 이스보셋을 잔인하게 살해했습니다. 그들은 다윗의 환심을 사고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 밤새도록 달려가 이스보셋의 머리를 다윗에게 가져갔으나, 다윗은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그들의 행위를 강력히 규탄하고 처형했습니다.
권력의 허망함과 배신
이스보셋의 비참한 최후는 사울 왕가의 완전한 몰락을 의미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하들에게조차 배신당했으며, 이는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세워진 권력의 허망함과 인간 충성심의 변덕스러움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아브넬의 죽음 이후 이스보셋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완전히 고립되었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다윗의 공의와 지혜
다윗은 이스보셋의 죽음에 대해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분노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신 여호와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며, 암살자들을 즉시 처형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행동은 그의 정의로움뿐만 아니라 정치적 지혜를 보여줍니다. 그는 불의한 방법으로 권력을 얻기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이스라엘 통일의 정당성을 확보했습니다.
5. 다윗,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다: 예루살렘 정복 (사무엘하 5:1-10)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다윗이...여부스 사람을 치고...그 성읍을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사무엘하 5:1-10)
이스보셋의 죽음 이후, 이스라엘 모든 지파는 헤브론으로 모여 다윗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다윗이 사울 생전에도 실질적인 지도자였음을 인정하며, 33세의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다윗은 즉시 군사적 전략을 세워 여부스 족속이 점령하고 있던 예루살렘을 공격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요압의 지휘 아래 수로를 통해 기습 공격하여 함락되었고, 다윗은 이곳을 '다윗 성'으로 개명하고 새로운 수도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하셨고, 그의 통치는 점점 강성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성취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사무엘을 통해 예언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7년 6개월간 유다를,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33년간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총 40년을 통치했습니다.
예루살렘,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은 해발 800미터의 산지에 위치한 천연 요새였습니다. 다윗은 이곳을 정복한 후 시온 산성을 건설하고, 두로 왕 히람의 도움으로 백향목 궁전을 지었으며, 이후 언약궤를 이곳으로 옮겨와 영적 중심지로 삼았습니다.
미래의 상징
예루살렘은 단순한 정치적 수도를 넘어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곳은 훗날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메시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구원 역사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새 예루살렘의 예표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울의 죽음과 다윗 왕조의 시작, 이스라엘 내부의 내전과 분열, 그리고 예루살렘 정복을 통해, 슬픔과 애가, 엇갈린 운명,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와 약속의 성취를 묵상했습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며 진심 어린 애가를 지었고, 유다 지파가 먼저 다윗을 왕으로 세웠지만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북쪽 지파들의 왕이 되면서 7년간의 내전이 이어졌습니다. 마침내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모여 다윗에게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라고 고백하며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었습니다.
다윗은 강력한 여부스 족의 요새였던 예루살렘을 정복하여 '다윗 성'이라 이름 짓고 자신의 수도로 삼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군사적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였으며, 예루살렘은 훗날 성전이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일어날 거룩한 도성이 되었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삼하 5:10)는 말씀처럼, 다윗의 통치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섭리와 구원 계획을 드러내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하나님의 임재, 경외와 기쁨, 그리고 예배'에 대해 묵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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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더바이블은 여러분의 성경 통독 여정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여러분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분과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 저희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사무엘하 6장을 통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하나님의 임재, 경외와 기쁨, 그리고 예배"에 대해 묵상해 보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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